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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8. 18世 〉2. <요재공>무민공휘인건묘갈명(无憫公諱寅建墓碣銘)
1. 문헌 목록 〉18. 18世 〉4. <요재공>증통훈대부사복사정공휘순무묘표(贈通訓大夫司僕寺正公諱淳茂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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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요재공>일신재공휘인겸묘갈명(日新齋公諱寅謙墓碣銘)
日新齋公諱寅謙墓碣銘 吾友趙東變甫以其五世祖日新齋公表隨之文囑不侫曰我先祖一生固窮守道惟孝友是敦足可爲後承䂓範矣墓木巳拱尙闕顯刻願垂一言之重以詔久遠正會辭非其人而終不獲按公諱寅謙字君重齋號日新玉川名族遯世菴諱憫屋其八世祖也高祖曰將仕郞淑曾祖曰相說祖曰通德郞鼎來考曰德湖垕東文行著世妣曰晋州鄭氏父世陽英廟丙寅純廟丁卯生卒也墓在使臣院左基洞壬原配昌寧曺氏夏翊女壬申生壬午沒祔公墓二男景裕景昊一女適善山柳慶洛孫男進玉進周進章長房出進大進采次房曾玄以下多不盡錄竊謂君子之澤五世而斬者盖以世序而論也非謂德敎遺韻也公之雲仍歷累數世而克守故家典判公之敎在是也嗚呼此可以銘公墓也巳因爲之銘曰匪爵而尊匪祿以榮得之於天能壽厥名仁江之上有崇四尺我詞匪諛庸示千百 庚戌十月 日 安東 金正會 謹撰 五世孫 東龍 書 有司 昌勳 玟奎 일신재공휘인겸묘갈명(日新齋公諱寅謙墓碣銘) 나의 벗 趙東變이 그의 五世祖 日新齋公의 表石의 글로 내게 부탁하며 말하기를 우리 先祖께서 一生을 진실로 窮한 가운데서도 道를 지키고 오직 孝友가 이에 돈독하여 足히 後承에게 規範이 될 만 한데 墓木이 아름드리인데도 아직도 나타나게 刻한 것이 없으니 願컨대 한 말씀 무겁게 주시어 오래도록 詔傳하게 해 달라 하기 正會 그 인물이 아닌 것으로 사양했으나 끝내 얻지 못하고 살펴보니 公의 諱는 寅謙이오 字는 君重이며 齋號가 日新이다. 玉川名族으로 遯世菴 諱憫屋이 그의 八世祖이고 高祖는 將仕郎 淑이오 曾祖는 相説이오 조부는 通德郎 鼎來요 아버지는 德湖 垕東이니 文行이 세상에 나타났다. 어머니는 晋州鄭氏이니 아버지는 世陽이다. 英祖 丙寅과 純祖 丁卯는 生卒年이고 墓는 使臣院 左基洞 壬坐原이다. 配 昌寧曺氏는 夏翊의 따님으로 壬申에 生하여 壬午에 卒하니 公의 墓에 祔藏했다. 二男은 景裕·景昊이고 一女는 善山 柳慶洛에게 出嫁했다. 손자 進玉·進周·進章은 長房 소생이고 進大·進采는 次房 소생이다. 증손·현손 이하는 많아서 다 수록하지 않는다. 그윽이 말하기를 君子의 은택도 五世면 끊긴다고 하는것은 대개 世代의 次序를 말한 것이고 德敎의 遺韻을 말한 것은 아니라 公의 자손들이 여러 代를 내려 오면서도 옛집의 典刑을 能히 지키고 있으니 公의 가르침이 이에 있음이라. 嗚呼라 이로써 公의 墓에 銘을 할 만 하도다. 因해 銘을 하니 爵位로 높은 것이 아니오 祿으로 영화로운 것이 아니언만 하늘에서 얻어 能히 그 이름이 永遠하도다. 仁川江 위 우뚝한 四尺 무덤 있어 나의 글이 거짓되지 않음에 千百世토록 보이리로다. 庚戌(一九七○年) 十月 日 安東 金正會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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